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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Bay Im 2025. 2. 26. 17:47

첫 번째 편지

p15

이 모든 것들을 다정하고 차분하고 겸손한 솔직함으로 묘사하십시오.

p18

당신의 모든 성장과 발전을 조용하고도 진지하게 이어나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자꾸만 바깥 세계만을 쳐다보고, 당신의 가장 조용한 시간에 당신의 은밀한 감정을 통해서나 답해질 수 있는 성질의 질문들에 대해 외부로부터 답을 얻으려 할 때 처럼 당신의 발전에 심각한 해가 되는 것도 없습니다.

 

세 번째 편지

p30

비평만큼 예술작품에 다가갈 수 없는 것도 없습니다. 사랑만이 예술작품을 포착할 수 있으며 올바르게 대할 수 있습니다. … 당신은 늘 자신과 당신의 느낌이 옳다고 생각하십시오. 지금의 당신의 견해가 틀렸다면 당신의 내면의 삶의 자연스런 성장이 천천히 그리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당신을 다른 인식으로 이끌 것입니다. 당신의 생각이 주위로부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조용히 제 스스로 자라나도록 두십시오. 그와 같은 성장은, 모든 진보가 그렇듯이,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뻗쳐 나와야 하며, 그 무엇에 의해서도 강요되거나 재촉당해서는 안됩니다.

p31

모든 것은 산달이 되도록 가슴속에 잉태하였다가 분만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상과 느낌의 모든 싹이 완전히 자체 속에서, 어둠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속에서, 무의식 속에서, 우리 자신의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것 속에서 완성에 이르도록 내버려두십시오. 그러고 나서 깊은 겸손과 인내심을 갖고 새로운 명료함이 탄생하는 시간을 기다리십시오.

걱정하지 않아도 여름은 오니까요. 그러나 여름은 마치 자신들 앞에 영원의 시간이 놓여 있는 듯 아무 걱정도 없이 조용히 그리고 여유 있게 기다리는 참을성 있는 사람들에게만 찾아 오는 것입니다. … 나는 오히려 내게 고맙기만 한 고통 속에서 그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인내가 모든 것이라고!

 

네 번째 편지

p40

당신은 참으로 젊습니다. 당신은 모든 시작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 당신의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 채로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인내심을 갖고 대하라는 것과 그 문제들 자체를 굳게 닫힌 방이나 지극히 낯선 말로 적힌 책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당장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마십시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그 해답을 구하지 못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그 해답을 직접 채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궁금한 문제들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먼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해답 속에 들어와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p45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당신의 성장을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성장의 뒤쪽에 쳐져 있는 사람들에게 친절하십시오. 그리고 그들 앞에서 확실하고 태연하게 행동하도록 하고, 당신의 의심으로 그들에게 고통을 주지 말 것이며, 그들이 이해 못할 당신의 확신이나 기쁨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지도 마십시오.

 

여섯 번째 편지

p57

어느 날 어른들이 부산을 떨며 하는 일들이라는 것이 모두 보잘것없는 것이며 또 그들의 직업은 그 자체로 굳어버려 삶과 아무런 관련을 맺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왜 우리는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그 모든 것들을 자신의 세계의 깊은 곳으로부터 그리고 그 역시 일이요 지위요 직업인 자기 자신의 고독의 드넓은 공간으로부터 낯선 것들을 바라보듯 바라보지 않는 걸까요?

 

일곱 번째 편지

p67

사람들은 지금까지 모든 것을 쉬운 쪽으로만 해결해 왔습니다. 쉬운 것 중에서도 가장 쉬운 쪽으로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려운 것을 향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어려운 것을 향합니다.

p68

사랑하는 것 역시 훌룡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어려우니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 그것은 우리에게 부과된 과제 중에서 가장 힘든 과제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최후의 과제이며 궁극적인 시험이자 시련입니다.

p69

사랑은 개인이 성숙하기 위한, 자기 안에서 무엇이 되기 위한, 하나의 세계가 되기 위한, 즉 상대방을 위해 자체로서 하나의 세계가 되기 위한 숭고한 동기입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이 점에서 그토록 빈번하게 그리고 그토록 통탄스럽게도 실수를 범합니다. (참을성이 없다는 것이 젊은이들의 본질이기는 하지만) 사랑이 그들에게 다가오면, 그들은 서로 상대방을 향해 자신을 내던지고 자신들을 흩뿌려버립니다.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고, 질서도 잡히지 않고, 혼란스럽기만 한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반씩 부서진 존재의 더미를 가지고 그들의 삶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반씩 부서진 존재의 더미를 그들은 유대라고, 실제로 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의 행복이라고 또 그들의 미래라고 부르지요. 따라서 그들 각자는 상대방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이며 나아가서 앞으로 그들에게 다가올 다른 많은 사람들을 잃는 것입니다.

p75

당신이 언젠가 소년이었을 때 당신에게 부과되었던 그 위대한 사랑이 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시에 이미 당신의 가슴속에서 위대하고 훌룡한 소망들과 의도들이 익어 있지 않았다면, 오늘날 당신의 양식이 되어주고 있는 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났겠습니까? 나는 그 사랑이 당신의 기억 속에 강력하고도 힘차게 살아남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당신의 인생에서 첫 깊은 고독이었고 당신이 당신의 삶에 대해서 행한 첫 내면의 작업이었으니까요.

 

여덟 번째 편지

p80

당신이 슬픔에 잠겨 있던 동안, 당신 가슴속의 많은 것들이 변하지 않았나요? 당신은 어디인가, 즉 당신의 본질의 어느 한 부분이 변하지 않았나요?

슬픔의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하여 사람들이 슬픔을 시끌벅적한 곳으로 들고 갈 때, 오히려 그 슬픔은 위험스럽고 나쁜 것이 되는 것입니다. … 그런 슬픔들은 물러나는 척하였다가 짧은 잠복기가 지나고나면 전보다 훨씬 무섭게 터져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슬픔들이 가슴속에 집적되어 인생이 되면, 그 인생은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삶, 거부된 삶, 실패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머리가 미치는 곳보다 좀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면, 우리의 감지력의 망루를 지나 좀더 멀리까지 내다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슬픔들을 우리의 기쁨을 대할 때보다 훨씬 더 큰 신뢰로 참아 넘길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슬픔이란 무언가 새로운 것, 무언가 미지의 것이 우리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p81

우리의 거의 모든 슬픔들은 우리가 마비로 느끼는 긴장의 순간들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마비로 느끼는 까닭은 그 순간 우리는 우리의 소스라치게 놀란 감정들이 살아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우리의 내부로 들어온 낯선 것과 단 둘이서만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친근하고 익숙한 모든 것들이 한순간 우리에게서 떨어져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는 변화 과정의 한중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p82

우리가 슬픔에 젖어있을 때 더 조용해지고, 더 인내심을 갖고, 더 마음을 열수록, 새로운 것은 그만큼 더 깊고 더 확실하게 우리의 가슴속으로 들어옵니다. 그만큼 더 훌륭하게 우리는 그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고, 그만큼 더 많이 그것은 우리의 운명이 됩니다. 그러다가 미래의 어느 날 그것이 ‘이루어지면’(즉 그것이 우리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로 가면), 우리는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서 그것과의 친근감과 가까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p83

우리는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깥으로부터 우리의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p87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있으면 우리의 뛰어난 보호색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과 전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불신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세계는 우리에게 적대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우리의 삶을 이룩해나간다면, 지금 당장은 우리에게 낯설어만 보이는 것도 우리에게 더없이 친숙하고 소중한 것이 될 것입니다.

p89

자신을 너무 지나치게 관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부터 너무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마십시오. 그것을 그냥 일어나는 대로 두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당신의 과거를 너무 쉽사리 질책의 눈길로 되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물론, 당신의 과거는 지금 당신이 마주치고 있는 그 모든 것에 나름의 몫을 갖고 있습니다.

 

아홉 번째 편지

p95

마음속에 늘 충분한 인내심을 지니십시오. 또한 소박한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어려운 것을 더욱더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당신의 고독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고는 삶이 당신에게 벌어지는 대로 놔두십시오. 삶은 어떠한 경우에도 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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